블라인드 테스트의 전설 | 파리의 심판(와인)

2019. 1. 8. 19:44생활의 지혜/생활의 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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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나 대학 면접에서 블라인드 테스트를 많이 진행합니다.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어떠한 자료도 사전에 확인하지 않고 면접을 보는 것을 뜻하죠.


비슷한 사례로는 일반인들에게 코카콜라와 펩시콜라의 상표나 특징을 감추고 순전히 맛을 기준으로 평가하게 했던 펩시의 비교 광고가 있습니다.



출연자의 신원을 감추고 노래 실력만으로 경쟁시키는 MBC의 <복면가왕> 같은 프로그램이나 맥주, 커피, 화장품 등의 선호도 조사도 비슷한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사실 블라인드 테스트는 과학 실험의 엄밀성을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할 과학적 방법중 하나입니다. 실험자나 피실험자가 갖고 있는 사전 지식 등이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편향)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죠.


오늘날 '과학 실험'이나 '과학적 지식'이라 불리는 것들은 거의 모두 블라인드 테스트라는 기초 위에 쌓아올린 지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파리의 심판 | 와인의 역사를 바꾸다

코카콜라와 펩시콜라의 유명한 비교 테스트 이전, 1970년대 전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사건이 있으니 일명 '파리의 심판'이라 불리는 그것입니다.


파리에서 와인바이어로 일하던 영국인 스티븐 스퍼리어, 그리고 미국인 직원 패트리샤 갤러허는 그들이 운영하던 와인숍과 와인스클 '아카데미 뒤뱅'을 홍보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독립 200주년을 맞은 미국 캘리포니아의 소규모 신생 와이너리들의 와인을 프랑스에 소개하는 이벤트를 기획했죠.  


시음회는 화이트 와인과 레드 와인 각 10종씩 블라인드 테이스팅으로 순위를 결정하는 행사였고, 이를 위해서 9명의 프랑스인 와인 전문가를 심사위원으로 위촉합니다.



* 로마네 콩티의 공동소유자 오베르드 빌렌, 보르도 그랑 퀴리 샤또들의 연합체 UGC의 사무총장 피에르 타리, 프랑스 최고의 와인전문지 르뷔드 뱅 드 프랑스의 편집장 등


행사는 오전에 화이트 와인, 오후에 레드 와인 시음 순으로 진행되었고 캘리포니아산 6종류, 프랑스산 4종류로 구성되었습니다. 프랑스 와인은 화이트는 부르고뉴 생산자의 그랑 크뤼와 1등급이었고, 레드 와인도 보르도 그랑 크뤼 1, 2 등급의 최상급이었습니다.


여유로운 분위기에서 진행된 오전 세션의 결과는 모두를 당혹케 했습니다.

미국산 '샤또 몬텔레나 샤도네이 1973'이 총점 132점으로 1위를 차지했기 때문이죠. 126.5점으로 2위에 오른 프랑스 와인 '도멘 룰로 뫼르소 1등급 샴 1973'에 큰 점수차로 앞선 것입니다. 더구나 5위 이내 3개 와인이 미국산이었죠.



당황한 심사위원들은 오후 세션에서 테이스팅에 집중합니다.

하지만 레드 와인에서도 미국산 '스택스 립 와인 셀라스 S.L.V. 카버네 소비뇽 1973'이 1위에 오릅니다. 2~4위는 샤또 무똥 로칠드, 샤또 몽로즈, 샤또 오브리옹이었죠.

사태가 심각해지자 잡지 편집장 오데뜨 칸은 자기 채점표를 돌려달라고 요구하는 해프닝의 주인공이 되기도 합니다.



이 사건은 당시 특별한 취재 의사 없이 우연히 시음회에 참가한 TIME지의 파리 특파원 조지 테이버에 의해 전세계에 알려지고, 그는 인생 최대의 특종을 낳으며 세계 와인계의 판도를 일거에 바꾸게 됩니다.


'파리의 심판' 또는 '파리 테이스팅'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캘리포니아 와인을 주목하게 만들었고, 이후 다양한 산지의 와인이 오로지 품질로 인정받을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샤또 몬텔레나 샤도네이와 스택스 립 와인 셀라스 S.L.V 카버네 소비뇽을 음미하면서, 인재나 서비스 또는 제품 본연의 경쟁력만으로 정당한 평가를 내릴 수 있는 안목을 키울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추신] 파리스의 사과 | Judgement of Paris

포스팅을 위해 구글에서 '파리의 심판'을 검색해보니 재미있는 결과가 나와 부록을 추가합니다.


서양에 전하는 유명한 3개의 사과 이야기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아담과 이브가 먹은 선악과, 파리스의 사과, 뉴튼의 사과가 그것입니다.


바다의 여신 테티스와 미르미돈의 영웅 펠레우스가 신들을 초대해 성대한 결혼식을 올립니다.

그런데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한 불화의 여신 에리스는 화가 나서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 새겨진 황금사과를 결혼식장에 던졌습니다.

모든 여신들이 서로 가장 아름답다며 싸우기 시작했고, 최종 후보로 제우스의 아내 헤라, 전쟁과 지혜의 여신 아테나,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남게 됩니다.


심판으로 양치기 청년 파리스가 선택되고, 세 여신은 달콤한 약속으로 파리스를 유혹합니다.

헤라는 세계를 지배하는 왕으로 만들어주겠다고, 아테나는 모든 전쟁에서 승리하게 해주겠다고, 아프로디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젊은 파리스는 아프로디테를 선택했고, 약속대로 헬레네를 아내로 얻게 됩니다. 이 헬레네가 스파르타의 왕비였기 때문에 훗날 트로이 전쟁이 발발하게 됩니다.


루벤스, 파리스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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