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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민국의 발전에 따른 행정구역의 변화 : 땅따먹기
    정보는 나의 힘 2026. 1. 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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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부딩

    1. 강남의 엄마는 성동구!

    가. 성동 → 강남(1975) → 광진(1995)
    2020년대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성동구, 한때는 서울 동쪽을 통째로 품은 ‘대장 구’였습니다.

    강남·서초·송파·강동이 전부 성동이었고, 압구정까지 성동 소속이었습니다.

    하지만 개발 바람이 불자 1975년 강남을 떼어주고, 1995년엔 광진까지 분리됐습니다.

    큰 애(강남)는 내줬지만, 최근 성수동이 다시 성동을 키우는 중입니다.
    • 1975년 : 강남구 분리(한강 이남 독립)
    • 1995년 : 광진구 분리(알짜 건대·구의동 이관)

     

    나. 강남 → 서초(1988)
    강남과 서초는 원래 한 뿌리였습니다. 성동에서 떨어져 나올 땐 ‘강남구’ 하나였죠.

    하지만 인구가 폭발하자 1988년 서초가 갈라졌습니다.

    강남은 테헤란로를 중심으로 돈을 키웠고, 서초는 법원·검찰청을 품으며 권력을 챙겼습니다.

    서로 다른 길을 걸었지만, 둘이 붙어 있기에 집값은 더 날아올랐습니다.
    • 경계 : 강남역 기준 동쪽은 강남, 서쪽은 서초
    • 캐릭터 : 돈(강남) vs 권력(서초)

     

    다. 강남 → 강동(1979) → 송파(1988)
    강동도 원래 강남의 일부였습니다.

    1979년 천호출장소가 승격해 강동구가 됐고,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잠실·선수촌이 떼어져 송파가 만들어졌습니다.

    온 나라가 올림픽을 준비한다고 지도를 다시 그리던 시절, 그 한 번의 선 긋기가 지금의 강남 동남권을 만든 셈입니다.
    • 1979년 : 강남구 → 강동구 분리
    • 1988년 : 강동구 → 송파구 분리(올림픽 준비)

     

    2. 강북의 엄마는 도봉구!

    가. 도봉 → 노원(1988) → 강북(1995)
    노원구는 원래 도봉이었습니다. '노도강'으로 불리는 노원·도봉·강북이 전부 도봉구였죠.

    원체 땅이 넓어 1988년 노원을 떼어내고, 1995년 강북까지 독립시켰습니다.

    노원은 상계·중계 신도시를 품으며 덩치가 커져 '노도강'의 앞자리를 차지했습니다.
    • 1988년 : 노원구 분리(상계·중계 개발) 
    • 1995년 : 강북구 분리 (구도심 독립)

     

    나. 구로 → 금천(1995)
    구로공단의 역사를 품은 구로구. 인구가 급증하자 1995년 남쪽을 떼어내 금천구를 만들었습니다.

    행정은 갈라졌지만 둘은 여전히 한 몸입니다. 구로디지털과 가산디지털을 묶어 ‘G밸리’로 부르니까요.

    최근 신안산선 호재로 동생(금천)이 형(구로)을 맹추격하는 중입니다. 
    • 1995년 : 구로구 → 금천구 분리 
    • 캐릭터 : 구로(IT·게임) + 금천(패션·아울렛)

    다. 서대문 → 은평(1979)
    은평은 원래 서대문의 일부였습니다. 1979년 통일로 개발과 함께 떨어져 나왔죠.

    서대문이 신촌·이대 상권을 챙기는 동안, 은평은 오래 외곽 취급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최근 GTX-A가 판을 뒤집고 있습니다. 낡은 상권보다 교통 뚫린 신주거지가 서북권의 힘을 가져오는 중입니다.
    • 1979년 : 서대문구 → 은평구 분리 
    • 역전 카드 : GTX-A 연신내역

    연신내역 일대 지도

     

    3. 경기 남부의 엄마는 시흥군과 광주군!

    가. 시흥군 → 과천·안산 → 군포·의왕·시흥
    지금의 시흥시는 과거 거대했던 ‘시흥군’의 일부입니다.

    원래 시흥군은 서울 금천·구로·동작은 물론 안양·군포·의왕·안산까지 품던 경기 남부의 맏형이었죠.

    서울이 커질 때마다 땅을 떼어주던 ‘아낌없이 주는 나무’였습니다.

    하지만 1970년대 이후엔 관리 효율을 위해 여러 개의 시로 쪼개지는 운명을 맞이했습니다.
    • 1986년 : 과천(정부청사), 안산(반월공단) 독립
    • 1989년 : 군포·의왕·시흥이 각각 시로 승격하며 시흥군 폐지

     

    나. 군포 → 산본
    산본은 족보가 좀 독특합니다. 1989년 군포읍이 시로 승격할 때, 산본신도시 계획도 같이 굴러갔거든요.

    원래 군포는 안양 뒤에 가려진 조용한 동네였지만, 1기 신도시라는 국책 사업을 등에 업고 수도권 주인공으로 급부상했죠.

    • 1988년: 산본 개발 구상 등장
    • 1989년: 군포가 시로 승격, 산본 본격 개발
    → 이때부터 군포 얼굴이 산본으로 바뀜

     

    다. 광주군 → 성남 → 하남
    경기 동남권 ‘종갓집’은 광주군입니다. 지금의 성남과 하남이 다 여기서 나왔죠.

    광주군은 남한산성 중심의 전통 행정지였고, 서울 강남 개발의 앞마당이었습니다.

    하지만 자식들이 신도시라는 ‘치트키’를 쓰면서 판이 뒤집혔습니다.
    • 1973년 : 성남 분리
    • 1989년 : 하남까지 독립하며 광주의 판이 쪼개짐
    → 낳은 건 광주, 키운 건 성남, 판을 장악한 건 신도시

     

    라. 성남 → 분당
    분당은 원래 성남 남쪽 논밭이었습니다. 

    하지만 인구가 폭발하자 1991년 성남시가 남쪽을 떼어내 분당출장소를 만들었고, 같은 해 분당구로 승격했습니다. 

    분당은 애초부터 ‘강남 복제’가 목표였습니다. 결과요? 거주민들의 정체성은 ‘성남’보다 ‘분당’에 더 강하게 박혔습니다.
    • 1991년 : 분당이 성남에서 분리됨
    → 엄마(성남)보다 잘 나가는 자식

     

    3. 경기 북부의 종가는 양주군!

    가. 양주군 → 의정부·동두천 
    경기 북부의 대장은 원래 양주였습니다.

    하지만 교통 요지였던 의정부가 1963년 먼저 “나 이제 시(市) 할래”라며 짐을 쌌고, 1981년엔 동두천까지 시로 승격했죠.

    양주는 졸지에 허리가 뚝 끊겨 남북으로 쪼개지는 수모를 당했습니다.
    • 1963년 : 의정부시 승격(양주에서 분리)
    • 1981년 : 동두천시 승격(양주에서 분리) 
    → 살 떼주고 허리 끊긴 비운의 ‘종갓집’

     

    나. 양주군 → 남양주 → 구리 
    양주의 동쪽 마당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1980년 남양주군이 갈라져 나왔고, 6년 뒤 그 남양주에서 구리가 또 튀어나왔습니다.

    ‘양주→남양주→구리’로 이어지는 3대 가계도가 완성된 셈인데, 양주 입장에선 자식들이 줄줄이 가출한 꼴입니다.
    • 1980년 : 남양주군 독립(양주의 거대 동부 지역)
    • 1986년 : 구리시 승격(남양주에서 독립) 
    → 동쪽 마당까지 탈탈 털린 양주의 눈물

     

    다. 양주군 → 노원·도봉 
    양주의 눈물은 끝이 아닙니다. 서울에 땅을 뺏긴 기억은 더 뼈아프죠.

    1963년 서울이 몸집을 키울 때 양주군 노해면이 서울 성북구로 편입됐고, 이후 도봉구와 노원구로 갈라졌거든요.

    양주가 내준 논밭은 이후 1988년 서울올림픽 전후 상계동 신시가지 개발을 거치며, 서울 대표 아파트 밀집 지역으로 바뀌었습니다.
    • 1963년 : 양주군 노해면 → 서울 성북구 편입
    • 1973년 : 도봉구 신설
    • 1988년 : 노원구 분리 
    → 서울에 알짜배기 다 퍼준 ‘아낌없이 주는 나무’

     

    라. 고양군 → 고양시 → 고양특례시 
    서북권 맹주 고양 족보도 드라마틱합니다.

    원래 조용한 농촌이던 고양군이 1992년 시로 승격하며 ‘일산’이라는 신도시 치트키를 썼습니다.

    덕분에 지금은 인구 106만 명의 거대 특례시로 성장하며 양주의 옛 영광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 1992년 : 고양군 → 고양시 승격
    • 2022년 : 고양특례시 출범
    → ‘일산’이라는 이름으로 갈아탄 성공 신화

     

    4. 지방 자치단체의 살아남기 전략!

    가. 경남 울산시 → 울산광역시
    가장 화려한 ‘자수성가’ 사례입니다. 경상남도의 일부였던 울산이 덩치를 키워 광역시로 독립했죠.

    경남 입장에선 가장 돈 잘 버는 자식을 잃은 셈입니다.

    1962년 공업지구 지정 이후 현대차와 중공업 자본으로 쌓은 경제력이 홀로서기의 밑천이 됐습니다.
    • 1962년 : 울산군 일부 → 울산시 설치(성장의 시작) 
    • 1997년 : 울산광역시 출범(경남에서 완전히 독립) 
    → 경남의 세수 공급처, 광역시로 독립

     

    나. 창원·마산·진해 → 창원특례시

    지방판 메가시티의 시작입니다. 

    성격이 다른 세 도시, 공장 지대 창원, 오래된 부촌 마산, 바다를 낀 진해가 하나가 되었습니다.

    한때 경남의 리더였던 마산의 노련함과 신흥 부촌 창원의 자본이 섞이며, 통합 뒤 인구 100만 안팎 도시가 되었고 2022년부터 ‘특례시’라는 이름을 달았습니다.

    • 1980년 : 창원시 독립(마산에서 분리)
    • 2010년 : 창원·마산·진해 통합(30년 만의 재결합) 
    → 각자 버티다, 합쳐서 몸집 키움

     

     

    다. 청주시·청원군 → 청주시

    ‘도넛 모양’의 지도가 드디어 하나로 합쳐졌습니다. 

    청주시를 완전히 감싸고 있던 청원군이 긴 밀당 끝에 합류했습니다.

    인근 세종시가 인프라와 사람을 빨아들이기 시작하자, 위기감을 느낀 두 지역이 생존을 위해 손을 잡았습니다. 

    • 1946년 : 청주부와 청원군으로 분리

    • 2014년 : 네 번째 도전 끝에 청주시·청원군 통합 
    → 세종의 등장이 앞당긴 20년 짝사랑의 결실

     

    라. 여수시·여천시·여천군 → 여수시

    공단이 있어 자본력이 탄탄한 여천과 사람이 모이는 항구 도시 여수가 합쳐졌습니다.

    시민 발의로 통합을 이끈 사례로도 자주 언급됩니다.

    여천국가산단의 탄탄한 세수와 여수의 관광 브랜드가 동기화되며 전남의 경제 대장 자리를 굳혔습니다.

    • 1949년 : 여수읍 → 여수시 승격(분리 시작) 
    • 1998년 : 여수시·여천시·여천군 통합 
    → 실리와 낭만, 한 도시로

     

    마. 연기·공주·청원 → 세종특별자치시

    이름조차 낯설던 곳이 국가 행정의 중심으로 바뀌었습니다. 

    충남 연기군 전체에 공주시와 청원군 일부를 더해 정부가 지도를 다시 그렸죠. 

    이제 세종시는 전국 부동산 시장 흐름을 보여주는 기준점이 됐습니다.

    • 2007년: 행정중심복합도시 착공
    • 2012년: 세종특별자치시 공식 출범 
    → 경계를 다시 그어 만든 행정 수도

     

    바. 제주·서귀포·북제주·남제주 → 제주특별자치도 

    행정 다이어트가 자본을 깨운 사례입니다. 

    4개 시·군을 2개 행정시로 통합하고, 국제자유도시란 이름으로 규제를 풀었더니 글로벌 자본이 섬 전체를 훑었습니다. 

    인허가권이 하나로 합쳐지며 개발 속도에 불이 붙었고요. 

    칸막이를 치우니 섬 전체가 거대한 개발 상품이 됐습니다.
    • 2006년: 제주특별자치도 출범 및 기초지자체 폐지
    • 2010년대: 국제자유도시 바람과 함께 부동산 가치 급등 
    → 행정 벽을 허물고 섬 전체를 하나로 묶음

     

    사. 경북 군위군 → 대구광역시

    가장 따끈따끈한 ‘지역 통합’ 뉴스입니다. 

    대구경북통합신공항을 짓기 위해 경북 땅이던 군위군을 대구시로 통째로 편입시켰습니다. 

    덕분에 대구는 전국 광역시 중 가장 넓은 면적을 가진 도시가 됐죠. 

    공항 호재를 위해 두 지역이 지도 자체를 바꾼 겁니다.
    • 2023년: 경북 군위군, 대구광역시로 편입
    • 결과: 대구 행정구역 확장, 신공항 배후 역할 강화
    → 신공항을 위해 지역을 넓힌 대구의 선택

     

    아. 전주시·완주군(아직 못 정한 통합) 

    도넛 모양 지도를 가진 곳입니다. 전주가 완주에 둘러싸여 있거든요. 

     

    청주·청원처럼 합쳐야 마땅하지만 두 지역은 20년 넘게 못 붙었어요. 행정은 따로, 생활권은 하나입니다.

    전주의 인프라와 완주의 신축 아파트 사이에서 묘한 줄타기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 1997년·2009년·2013년 : 통합 시도했으나 완주 반대로 무산
    • 현재 : 전주·완주 통합 재추진 논의 중 
    → 20년째 고민 중인 지도의 미완성 퍼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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