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사형이 집행되지 않는 이유 | 사법 살인(1)

2020. 7. 20. 13:59생활의 지혜/생활의 팁

반응형

흉악범의 잔인한 범죄에 의해 피해자가 발생하면, 국민 정서상 사형이 선고되고 집행되기를 바라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법률상 사형제도를 유지하고 있을 뿐, 가장 최근의 집행일자는 1997년 12월 30일로서 10년 이상 사형 집행이 이루어지지 않아 국제사면위원회에 의해 '실질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되었습니다. (2007년 12월)

 

사형이 집행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근대 형법의 기본 이념인 '10명의 범죄자를 못 잡더라도, 1명의 억울한 피해자가 없게 하라'는 뜻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후진국일수록 사형제로 인한 억울한 피해자가 많이 발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독재국가에서 그렇죠.

 

우리나라도 공식적인 첫 사형 집행인 1947년 7월 14일 부터 1997년 마지막 집행까지, 역대 사형이 집행된 민간인-군인 사형수 919명 중에서 27%에 달하는 414명이 정치적인 이유로 사형이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상식적으로는 말이 되지 않지만, 법률적으로 말이 되는 조항을 악용해 자신의 정적을 제거하고 측근과 가족을 사회적으로 매장시킬 수 있기 때문에 독재자들이 즐겨 사용한 방법입니다.

이를 '사법 살인'이라고도 부르며, 1974년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민청학련 사건' = '인민혁명당(인혁당) 재건위 사건'이 다른 나라에도 알려지면서 국제적으로 사법 역사상 암흑의 날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외에도 경찰의 초동 수사의 한계 등을 위장하기 위해 피의자를 고문, 자백 받아 진범으로 만들어버린 경우 등이 줄지어 발생했기 때문에 '억울한 피해자'가 없도록 김대중 대통령 이후부터는 사형 집행이 엄격히 제한되고 있습니다.

 

아래는 사법 제도하 억울한 피해자가 발생한 대표적인 사건들입니다.

  

▶ 민청학련 사건 | 1974년

유신정권 당국이 발표한 민청학련(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사건 피고인 명단

당국 발표에 따르면 '민청학련은 공산계 불법 단체인 인혁당 재건위 조직과 재일 조총련계 및 일본 공산당, 국내 좌파, 혁신계 인사가 복합적으로 작용, 1974년 4월 3일을 기해 당시 정부를 전복시키려 획책했다'는 것입니다.

 

이중 관련자 8명에 대해서는 10개월에 걸친 3심 끝에 사형이 확정되었습니다. 

* 당시 대법관 명단

: 민복기(재판장), 홍순엽, 이영섭, 주재황, 김영세, 민문기, 양병호, 이병호(주심), 한환진, 임항준, 안병수, 김윤행, 이일규

: 이일규 대법관은 유일하게 반대 의견을 냈음(항소심에서 피고인 신문을 생략하고 항소이유에 관한 변론만 진행한 것은 절차상 문제가 있으니 원심을 파기하고 다시 재판하라)

 

사형이 집행된 8명의 희생자

1975년 4월 8일, 대법원에서 관련 피고인 36명의 상고를 기각함에 따라 원심대로 형이 확정되었고 다음 날인 4월 9일에 8명에 대한 사형이 집행되었습니다. 형량이 확정된지 겨우 18시간만의 일이었습니다. 더구나 유신 정권은 유족 동의 없이 시신을 탈취하여 화장해 버렸습니다. 심한 고문의 흔적과 억울한 죽음이 드러날까 두려워서였겠죠.

 

김용원 : 함안, 39세, 경기여자고등학교 교사

도예종 : 대구, 50세, 삼화토건 회장

서도원 : 창녕, 52세, 대구매일신문 기자

송상진 : 달성, 46세, 양봉업

여정남 : 대구, 30세, 경북대학교 총학생회장

우홍선 : 울주(현 울산), 45세, 한국골든스템프사 상무

이수병 : 의령, 38세, 삼락일어학원 강사

하재완 : 창녕, 43세, 건축업

 

▶ 춘천 파출소장 딸 살인사건 | 1972년

1972년 9월 27일, 춘천 우두동에서 파출소장의 딸인 10세 J모양이 성폭행을 당하고 살해되어 큰 충격을 일으킨 사건입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경찰 가족을 건드린 놈을 10일 안에 잡으라'는 명령이 떨어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10일째 되던 10월 10일에 경찰은 사건 현장 인근에서 만화가게를 운영하던 정원섭을 범인으로 발표합니다.

정씨에게는 무기징역이 선고되었고 이후 모범수로 15년형으로 감형, 1987년 12월에 풀려났습니다.

 

이후 정씨는 경찰의 고문을 폭로하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습니다.

비록 재심 청구는 기각되었으나, 2005년 진실·화해를 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당시 경찰들의 고문 수법이 정씨의 주장과 일치한다는 것과 증인들에게도 허위 증언을 하도록 협박했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도 이 사건을 다뤄서, 당시 국과수 기록이나 신문 기사에서 '범인의 혈흔이 A형'이라는 사실과 정씨의 혈액형이 B형이라는 것도 찾아냈습니다.

결국 2011년 10월 27일, 대법원은 정씨의 무죄를 확정해 무려 39년만에 누명이 벗겨지게 되었습니다. 또한, 2013년 7월 15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민주주의 법치국가에서는 결코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이라며 '국가가 정씨와 그 가족에게 26억 3,752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2014년 1월 23일, 서울 고법 민사8부에서는 소멸시효 기간이 10일 지났다며 1심 판결을 뒤집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결국, 2016년 일부 승소해 경찰관 3명과 그 유족들이 연대해 23억 8,80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이끌어냈으나 정작 조작된 증거로 기속한 검사나 이를 알고도 무기징역을 선고한 판사, 강압적으로 10일만에 범인을 잡으라고 강요한 국가에게는 책임을 전혀 묻지 않았습니다.

이후 문재인 정부 출범 후 2018년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농단이 불거진 뒤에 그 비밀이 드러났으니, '합리적 범위 내에서 과거사 정립'이란 명분으로 국가배상을 가로막으려는 의도가 횡행했던 것이었죠.

 

▶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

대한민국 3대 미제사건으로 개구리 소년 실종·살인 사건, 이형호 유괴 살인 사건, 이춘재 연쇄 살인 사건을 꼽습니다.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은 1986년~1991년에 걸쳐 화성군 태안읍 일대에서 일어난 성폭행 결합 연쇄살인 사건의 공식명칭이며, 오랜기간 '화성 연쇄살인 사건'으로 불렸습니다.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연쇄 살인 사건입니다.

 

2019년 9월 18일에 DNA 대조로 유력 용의자 이춘재가 특정되었고, 10월 1일 조사에서 이춘재가 범행을 자백해 미제 사건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형사소송의 공소시효가 2006년 4월 2일부로 만료되어 법적으로는 유죄 판결을 내릴 수 없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현재 범인 이춘재는 <청주 처제 살인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중입니다.

 

2020년 7월 2일, 경찰은 1년간의 재수사를 마무리하고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이에 따르면 이춘재는 화성 일대에서 10건의 살인 사건을 모두 저질렀으며, 8차 사건의 범인으로 검거돼 20년을 복역하고 2009년 가석방된 윤 모씨에 대해서는 수원지법에서 재심이 진행중입니다.

 

이에 더해 1987년 12월 수원 여고생 살인 사건, 1989년 7월 화성 초등생 실종 사건, 1991년 1월 청주 여고생 살인 사건, 1991년 3월 청주 주부 살인 사건 등 4건도 모두 이춘재의 소행으로 드러났습니다.

 

경찰은 8차 사건 조사 당시 소아마비 장애가 있어 현장 상황을 근거로 범행을 저지르기에 불가능했던 윤모씨에게 고문과 협박을 동원해 자백을 받아냈고, 윤씨는 무기징역 선고-모범수로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습니다.

2020년 7월 2일, 수사를 마무리한 경찰은 배용주 경기 남부지방경찰청장이 고개 숙여 사과하기에 이릅니다.

 

"범인으로 몰려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윤모씨와 그의 가족, 당시 경찰의 무리한 수사로 인해 패해를 입으신 모든 분들께도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

 

또한 8차 사건과 1989년 7월 화성 초등학생 실종 사건 수사와 관련해 각종 불법을 저지른 혐의로 검찰, 경찰 등 9명도 입건했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