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7. 21. 14:00ㆍ생활의 지혜/생활의 팁
수사기관의 불법 행위(고문 등), 검찰의 무리한 기소, 제대로 걸러내지 못하는 |사법부..
설마 그럴리가 하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예상보다 자주 일어났던 사법 살인 이야기를 계속해 보겠습니다.
■ 엄궁동 2인조 살인 사건 | 1994년
1990년 1월 4일 부산 엄궁동의 갈대밭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으로, 범인을 체포해 대법원까지 유죄선고를 하고 해결된 사건으로 여겨졌습니다.
목격자 남성은 피해 여성과 함께 카 데이트를 하던 중 2인조 남성이 가스총으로 위협하며 습격했고, 여성은 성폭행을 당하고 자신은 손이 묶여 물에 수장되기 직전 극적으로 매듭을 풀고 격투 끝에 현장에서 도망쳤다고 진술합니다.
당시 차량 통행이 제한된 을숙도 일대에서 경찰을 사칭하며 돈을 갈취하고 다녔던 용의자들이 체포되었고, 살인 등의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습니다. 이후 21년만에 감형 받고 출소하지만, 억울함을 호소하였습니다.
2016년 7월 일요신문 문상현 기자는 과거 수사 경찰이 이 사건에 대해 누명을 씌우고 조작한 의혹이 제기했고 같은해 10월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더욱 구체적인 조작 의혹이 드러났습니다. 이후 2019년 검찰 과거사위원회에서 '고문으로 인한 허위자백'임이 밝혀졌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변호사였던 시절에 이 사건의 변호를 맡았던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 사건 | 2000년
2000년 8월, 택시 기사 유모 씨가 범인에게 흉기로 12군데를 찔린 끝에 과다출혈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경찰은 사건 현장 인근에서 범인 도주를 목격한 최모 군(당시 15세, 커피 배달)을 살인 혐의로 체포했습니다.
최군은 무죄를 주장했으나 1심 재판부는 15년을 선고, 국선변호인은 유죄를 인정, 반성으로 감형 받는 전략을 설득합니다. 결국 항소심에서 10년이 확정됩니다. 최군은 10년을 복역하고 2010년 만기 출소합니다.
근로복지공단은 사망보험금에 이자를 합해 1.4억원을 구상권 청구하게 되고, 최군은 재심을 신청하게 됩니다. 검찰과의 오랜 싸움 끝에 2016년 11월 무죄가 확정됩니다. 이와 함께 당초 무혐의로 풀려났던 범인 김모 씨가 긴급체포되었고 2018년, 15년형이 선고되어 사건이 종결됩니다.
사건 발생 후 3년이 지난 2003년, 본래 담당인 익산경찰서가 아닌 군산경찰서에 '진범이 따로 있다'는 제보가 입수되었습니다. 사건을 맡은 군산경찰서는 용의자 김모 씨와 도피를 도운 임모 씨를 체포했습니다. 김모 씨는 진범이 아니고는 알 수 없는 구체적인 정보를 신빙성 있게 진술했고, 최 군이 누명을 쓰고 복역해 죄책감에 시달린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수사를 지휘하는 검찰은 '물증인 흉기를 확보하지 못했다'며 구속영장 신청을 반려하고, 쓰레기 매립장 전체라도 수색하겠다는 경찰의 신청도 '흉기에 대한 특정이 부족하다'며 반려합니다. 결국 긴급 체포 시한 48시간이 지나 김모 씨는 석방되었고, 친구 임모 씨는 2012년 자살로 생을 마감합니다.
2015년 7월, '태완이법'이 개정되면서 2000년 8월 1일 이후 발생한 모든 살인 사건의 공소시효가 폐지됩니다. 이 사건이 발생한 것이 2000년 8월 10일이므로, 간발의 차로 태완이법의 적용을 받아 재심이 확정되었습니다.
■ 수원역 노숙 소녀 살인 사건 | 2007년
2007년, 수원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으로 7명이 범인으로 지목되었으나, 모두 무죄 판결을 받은 미스테리한 사건입니다.
남학교인 수원고등학교에서 10대 소녀가 살해된 채 발견되었고 신원을 확인할 수가 없었던 경찰은 노숙하던 소녀라 단정하고 수원역 일대 노숙자들을 상대로 수사를 펼칩니다.
수원역에서 노숙하던 2명의 정신 지체인이 범인으로 체포되었으나, 8개월 후 경찰은 5명의 가출 청소년들을 진범이라며 발표합니다. 이 사건을 맡은 국선변호인 박준영 변호사(재심 전문 변호사로 이름을 알리고 있습니다)는 검찰과 끈질긴 법정 공방 끝에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아냅니다. 검찰의 심문 과정을 녹화한 영상에서 자백을 유도하고, 피의자들이 알지 못하는 사항을 알려주며 각인시키려는 시도가 드러났기 때문이죠.
결국 이 사건 역시 경찰이 붙잡은 범인, 검찰이 주장한 범인이 서로 다른데다 이들 모두 사실상 무죄라는 결론이 내려지게 됩니다. 특히, 사건 초반에 피해자 신원을 확인하지 못하고 50여 일이 지나서야 SBS를 시청한 부모가 연락해 파악하게 된 점이 아쉬운 부분입니다.
또한 피해자를 노숙 소녀로 단정한 경찰의 초보적인 실수, 검찰의 무리한 수사 지휘와 유도심문과 같은 전형적인 사법 살인의 구조적 문제점이 드러난 사건입니다.
다시 처음의 문제제기로 돌아가서..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던 많은 범죄들이 밝혀지고 가해자를 찾아 여론의 돌팔매질을 하고 있는 가운데, '10명의 범죄자를 못 잡더라도, 1명의 억울한 피해자가 없게 하라'는 근대 형법의 기본 이념을 다시 한번 소개해 드립니다.
피해자의 목소리를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되겠지만, 범죄 사실이 명확하게 드러나기 전에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신중하게 지켜야 하는 것 또한 중요한 과제입니다.
'생활의 지혜 > 생활의 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슬기로운 소비 생활 | 2020 카드 리빌딩 (0) | 2020.09.14 |
---|---|
어떤 집에 살고 싶은가요? | 발코니와 베란다 (0) | 2020.09.08 |
한국에서 사형이 집행되지 않는 이유 | 사법 살인(1) (0) | 2020.07.20 |
플라스틱 소비량을 줄여보자 | 환경의 날, 6월 5일 (0) | 2020.06.05 |
[강연] 아이를 살리고 싶다면 부모가 저항하라! (0) | 2020.05.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