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업계에 노조가 탄생하다 | 파리바게뜨가 불러온 나비효과

100억대 도박으로 나라를 구했다고 한다면, <신비한TV 서프라이즈>에나 소개될법한 믿거나 말거나 류의 이야기라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또는 미국 라스베거스를 무대로 하는 헐리우드 영화나 미드의 어딘지 낯익은 설정으로 여겨질 것 같네요.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그것도 우리나라에서 말이죠.

 원정도박이 불러온 나비효과 | 최순실 게이트

2015년 9월, 검찰은 폭력조직 '범서방파'의 해외 원정 도박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한 유명 화장품 회사의 대표가 연루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구속합니다. (네이처리퍼블릭 정운호)

* 프로야구 삼성 선수들도 도박에 연루되어 한국시리즈에 출전하지 못하고, 그 해 우승은 두산이 차지합니다.

이 남자에게 여 변호사가 접근하지만 뜻대로 풀려나지 않자 둘은 수임료를 놓고 진흙탕 싸움을 펼치고 변호사는 구속됩니다. (최유정)

남자를 조사하던 과정에서 롯데면세점 입점을 위해 로비한 사실도 드러납니다. 수십억 원의 비자금도 조성한 것이 포착되었구요.

이에 검찰은 2016년 6월, 롯데그룹을 압수수색합니다. 그런데, 돌연 롯데그룹 부사장이 자살합니다. (이인원)

법조비리를 저지른 홍만표가 무대에 등장하고, 청와대 민정수석(우병우)이 연루되어 있다는 것도 밝혀집니다.

이즈음 고위공직자 재산이 공개되는데, 넥슨에게 뇌물을 받은 진경준 전 검사장 사건을 조사하던 과정에서 돌연 조선일보가 넥슨과 우병우의 부동산 비리 의혹을 제기합니다.

청와대와 조선일보의 기싸움으로 조선일보는 k스포츠와 미르재단에 청와대가 압력을 행사해 기업들에게서 상납받았다는 폭로를 합니다. 청와대는 조선일보 주필(송희영)이 대우조선해양 사장에게 접대받았다고 폭로하죠.

조선일보가 잠시 물러난 사이 한겨레는 조선일보 보도를 추적해서 '최순실'이 배후임을 밝혀냅니다.

딸 정유라의 이화여대 부정입학 의혹도 연달아 터져나오고, 박근혜와 최순실의 아버지 최태민과의 관계도 다시 부각됩니다.

이후 jtbc가 하늘의 도움으로 최순실의 PC를 입수해 파일을 공개하며 탄핵까지 이어집니다.

 파리바게뜨 노조가 불러온 나비효과 | IT 업종 노조 설립

우리나라는 대통령이(2017년 10월, 취임 100일 기자회견) '노조 조직률을 높이기 위해 정부도 정책적으로 노력하겠다'며 대선 공약을 지키겠다고 앞장섰지만, 여전히 조직률이 10%대에 머물고 있는 특이한 환경에 처해있습니다.

아무튼 더디긴 하지만 현정부 출범 이후, '무노조 경영'을 앞세워 노조를 탄압했던 삼성 그룹 등이 노선을 포기하는 등 점차 노조 설립 뉴스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2017년

7월 | 삼성에스원 노조 (민노총)

8월 | 파리바게뜨 제빵사 노조 (민노총)

10월 | 한국오라클 노조 (민노총)

11월 | 삼성웰스토리 조리사-영양사 노조 (한노총)

2018년

1월 | 파리바게뜨 제빵사 제3노조

3월 | 삼성전자 노조

4월 | 네이버 노조 (민노총), 홈플러스 제3노조 (한노총)

7월 | 삼성화재 애니카손해사정 노조 (한노총), 대한항공 직원연대 노조 (민노총)

8월 | 진에어 노조, 삼성전자 구미사업장 노조

9월 | 넥슨 노조 (민노총), 스마일게이트 노조 (민노총), SK하이닉스 사무노조 (민노총)

10월 | 포스코 노조 (한노총-민노총), 카카오 노조 (민노총), 안랩 노조 (한노총)

이번 포스팅에서 주목하는 부분은 불모지로 여겨지던 IT 업계에 노조가 만들어졌다는 것, 그리고 여기에 파리바게뜨 노조 설립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점입니다. (여기서도 나비효과라 부르겠습니다)

 파리바게뜨의 노조 설립

인스타그램으로 모이고 팟캐스트로 교육하는 노동조합 | 오늘보다 2018/01 제36호

제빵업계 1위 파리바게뜨는 SPC그룹 산하의 프랜차이즈 빵집입니다. 전국에 3,400여개 매장을 운영하지만 대부분 프랜차이즈 가맹점입니다. 각 매장의 아르바이트 노동자는 가맹점주가 고용하고, 매장별로 1~2명의 제빵기사들은 협력사 소속입니다.

이들 제빵기사들은 지역별로 신규 매장에 새로 들어오는 후배들에게 1~2주간 업무 교육을 지원하는 일도 맡았습니다. 이렇게 교육지원까지 맡게되자 불만이 팽배해졌습니다. 

파리바게뜨 유니폼을 입고, 명함을 갖고 있으며, 빵과 케이크를 만들지만 소속은 협력사입니다. 실제 업무 지시나 인력 운영은 본사 회장의 의지에 따라 좌우됩니다.

아무튼, 교육지원 수당 5만원을 다시 반납하라는 회사 지시에 너무도 억울했던 기사들은 4월, 정의당의 노동상담소인 '비상구(비정규노동상담창구)'에 연락합니다. '비상구'는 이랜드-넷마블 등에서의 야근-임금 체불 문제를 사회 이슈화하는데 성공하며 주목받고 있습니다.

* 민주당 을지로 위원회 vs 정의당 비상구

* 팟캐스트 그알싫(링크) 17.12.29 에피소드에 따르면 그알싫을 듣던 제빵사가 조성주 소장^[각주:1]의 방송을 듣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소연하고자 정의당을 찾았다고 합니다. 정의당에서는 화섬노조를 소개해 주었고 그분은 얼떨결에 노조 위원장이 된 사례

5월 한 달 간 파리바게뜨 제빵기사 노동조건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이루어졌고, 때마침 촛불 혁명으로 정권도 교체되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부당노동행위 엄벌하겠다'며 이들에게 천군만마가 되어주었습니다.

6월, 정의당 이정미 의원은 제빵기사 불법파견과 임금 착취를 폭로했습니다.

8월, 고용노동부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김영주 장관 후보는 파리바게뜨 근로감독 중간 조사 결과 폭로한 현상이 실제 있었음을 인정합니다.

마침내 8월 17일, 인천 지역 제빵기사 40명이 모여 민주노총 화학섬유노조 파리바게뜨지회를 결성하게 됩니다.

* 화섬노조 (링크)

이후, 젊은 제빵사들은 그들이 가장 애정하는 SNS 인스타그램을 통해 순식간에 전국의 제빵기사들을 조합원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사측은 노조 파괴로 악명 높은 대형 로펌 <김앤장>과 함께 대응책을 마련하고, 보수 언론들도 합세해 노조를 없애려는 노력을 쏟아냅니다. 심지어 한국노총 마저 사측의 편을 드는 모양새를 취하기도 합니다.

‘오류 투성이’ 파리바게트 보도 문제점을 정리해 드립니다 | 미디어 오늘 (17.12.21)

파리바게뜨지회는 밴드와 카톡 단체방외에도 '팟캐스트'를 통해 위기를 돌파합니다. 

빠리바게뜨 제조기사들의 빵터지는 이야기(빠바 빵팟) : 링크

이들의 신선한 접근 방식과 기존의 노조에 대한 인식과 함께 기존 노조들에게 큰 교훈을 남겨주었습니다.

 IT 업계 노조 설립 이어지다

파리바게트가 불러온 IT 노조 설립 나비효과 | 바이라인네트워크 (18.9.7)

노동자가 각자 다른 매장에서 근무하는 프랜차이즈 업종에서 그 어렵다는 노조가 만들어지자, IT 업계는 신선한 충격을 받고 노조 결성에 탄력을 받게 됩니다.

우선 네이버가 IT 기업중 최초로 노동조합을 만들었습니다. 파리바게뜨 사례를 참고해 민주노총 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화섬노조)의 지회로 들어갑니다.

* 업종을 반드시 따라야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새로운 지회가 기존 업종과 다르다면 명칭을 추가할 수 있습니다. 화섬노조는 파리바게뜨로 '식품산업'을 추가한 것이네요

* 역시 그알싫 18.4.27 에피소드에 따르면 네이버 개발자가 파리바게뜨 노조 설립 에피소드를 듣고 똑같은 과정을 밟았다고 합니다

(링크)

네이버 노조 설립…30분 만에 가입자 100명 돌파 | 블로터 18.4.2

네이버가 앞장서자 '크런치 모드^[각주:2]'로 생존에 위협을 느끼던 게임업체에서도 노조가 만들어집니다.

이렇게 파리바게뜨와 네이버, 넥슨, 스마일게이트, 카카오까지 민주노총 화섬노조에 가입한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네이버의 노조 설립을 도운 강은미 정의당 비상구 부대표는 '노조 경험이 전무한 젊은 사람들이 대부분인 IT 업계는 노조를 만들기 정말 어려운 환경'이라며 '중간에 포기하거나 실패하는 경우가 많은데 화섬노조가 끝까지 잘 책임지면서 성공의 경험으로 이끌어낸 것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특히, 1990년대 이후 사회생활을 시작한 20~40대가 IT 업계에서 일하는 주축이라는 점, 파리바게뜨는 여성이 더 많은 조직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임영국 화섬노조 사무처장은 '기존에 노동조합 운동을 했던 사람들과는 다른 세대들'이라며, 젊은 노동자들과 대화가 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들 젊은 노동자들이 설립한 노조는 상급단체인 민주노총의 총파업(18년 11월 21일)에 참여하지 않았으며, 정부나 정치권, 노동계와 시민사회에 새로운 숙제를 안겨주었습니다. 

1. 전 정의당 미래정치센터 소장 [본문으로]
2. 게임 등 SW 개발 업계에서 마감을 앞두고 수면, 식사, 위생 등을 희생하며 장기간 업무를 계속하는 것 [본문으로]